태종 무열왕릉비는 한국의 풍부한 역사와 예술적 유산의 증거로 서 있습니다.
한국의 경상북도 경주시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의 제29대 태종무열왕의 능 앞에 세워진 능비로 국보 25호입니다.
신라 왕조의 고대 수도인 경주에 위치한 이 왕릉은 한국의 가장 영향력 있는 군주 중 한 명인 태종 무열왕에게 바쳐졌습니다. 태종 무열왕릉비의 역사적 배경, 특징, 그리고 문화적 유산에 대해 알아보도록 합시다.
1. 역사적 배경
이 비는 무열왕이 승하한 661년에 건립되었으며, 비에 쓰인 글씨는 김인문이 썼다고 하나 정확한 자료는 남아있지 않다.
김춘추라고도 알려진 태종 무열왕의 재위 기간은 654년부터 661년까지 신라를 통치했습니다. 진덕여왕 이후 신하들의 추천으로 신라왕이 되었다. 신라 왕조 아래 한국의 전망을 통일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태종 무열왕의 통치 기간은 안정과 실질의 시기였습니다. 고구려와 당나라 사이를 직접 오가며 탁월한 외교역량을 보여주었고, 김유신과 연합하여 신귀족세력을 형성하여 보다 강화된 왕권 중심의 집권체제를 확립했습니다. 이후 외교를 통해 당나라를 후원세력으로 삼고 고구려와 백제를 공략하여 백제를 멸망시켰습니다. 삼국통일이라는 대업의 토대를 마련한 후 왕에 오른 지 8년 만에 사망했습니다. 태종무열왕은 한국 역사에 대한 지도력과 은덕으로 인정받았습니다. 태종 무열왕릉비는 그의 마지막 안식처이자 선각 지도자로서 그의 영원한 유산의 상징입니다.
2. 특징
태종 무열왕릉비는 신라 시대 왕릉의 전형적인 정교한 설계와 건축적 기초로 특징지어집니다.
높이 2.1m 인 태종무령왕릉비는 1962년 국보로 지정되었습니다. 비의 아래에는 귀부를 놓고 위에는 이수를 얹은 형식으로 중국에서 유래한 디자인이지만, 이 비의 조각수법은 독창적입니다. 거북모양으로 목은 높이 쳐들고 발을 기운차게 뻗고 있어 전체는 앞으로 전진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연꽃으로 조각한 부분은 귀갑문이 조각적인 수법으로 새겨져 있습니다. 통일신라 초기의 조각들이 보여주는 특징으로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현재는 무열왕릉비 비석의 몸통이 없어졌지만, 삼국유사 태중춘추공조의 내용을 보면 고려시대 당시에도 별문제 없이 잘 존재하던 것으로 작성되어 있습니다. 조선 성종시기 작성된 지리서인 동국여지슬암에 따르면, 이때까지도 약간 훼손되긴 했지만 비문 내용이 쓰여있었을 비석의 몸통도 분명히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시기의 사진을 보면 이미 몸통이 없어진 상태로 있습니다. 아마도 조선 중기나 후기 사이에 깨져서 파편화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퇴계 이황 때부터 이미 비석은 훼손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퇴계선생이 역사 유적물인 태종무열왕릉비를 부셔서 선비들이 자신들이 쓰는 벼루를 만드는 데 사용했다는 소문을 듣고 편지로 그 지역의 유생들을 꾸짖는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고 합니다. 당시에 비석은 벼루로 쓰기 제격이었기 때문에 이런 일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비록 무열왕릉비 비석의 몸통은 없어졌으니, 남아있는 이수와 귀부를 합한 높이가 약 2.1m에 달하고 귀부의 길이는 3.34m, 폭은 2.53m라는 점을 감안하면, 온전했을 때의 본래 모습은 거대하고 웅장한 비석이었을 것이라 추측됩니다,
그래도 다행힌 점은 거북모양 비석 받침인 귀부의 보존상태가 아주 양호하다는 것입니다. 거북은 머리를 높게 쳐들고 있고, 네 발은 짧지만 쭉 뻗어 있는 모양인데 전체적으로 힘찬 인상을 풍깁니다. 거북의 머리는 사실적으로 조각되어 눈, 코, 입, 귀가 선명하며, 목과 몸통이 만나는 부분에는 목주름 4줄까지 묘사되어 있습니다.
거북의 등에는 육각형 등무늬를 여러 겹 새겼고, 등의 테두리에는 구름 모양 무늬를 둘렀습니다. 흠에는 비석을 끼우는데 이 부분도 연꽃무늬를 둘러서 장식했습니다. 무열왕릉비는 신라의 진취적인 기상을 잘 나타내는 동양 최고의 걸작 조각품이라 칭해지고 있습니다.
비석의 몸통은 없어졌지만, 천만다행으로 비석의 머릿돌 전면에 '태종무열대왕지비'라는 글자가 남았기에 이 비석이 무열왕의 능비이고, 바로 뒤 능이 태릉무열왕릉임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태종무열왕릉비는 태종 무열왕의 업적과 은덕을 자세히 묘사한 경의를 담고 단단하게 서 있습니다. 방문객들은 그 무덤의 장엄한 아름다움을 존경할 수 있고 신라 시대의 장례 관행과 믿음에 대한 인식을 얻을 수 있습니다.
3. 문화적 유산
태종 무열왕릉은 한국의 고대 역사의 명백한 기념물로써 엄청난 예술적인 중요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태종무열왕릉비의 섬세함은 전 세계에서 방문객들을 끌어들입니다. 태종무열왕릉비 뒤에는 태종물영왕릉비가 있습니다. 태종무열왕릉비는 신라 시대의 정치, 문화, 사회에 대한 인식을 제공하여 한국 왕조 역사에 대해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예술적인 보물을 보존하고 보여줌으로써, 우리는 태종 무열왕과 신라 왕조의 영원한 유산을 인식합니다.
태종 무열왕릉과 비석은 한국의 풍부한 예술적 유산과 문자 그대로의 유산의 영원한 상징으로 서 있습니다. 선견지명이 있는 주권자와 사라진 시대에 대한 기념물로써, 태종무열왕릉비는 한국의 한때 영광에 대한 관심을 제공하고 그것의 전통과 업적에 대한 존경심을 고취합니다. 문자 그대로의 중요성을 의미하는 건축적 아름다움을 탐구하든, 예술적 유산을 반영하든, 태종 무열왕릉과 비석을 찾는 사람들은 틀림없이 한국 왕실 역사의 시대를 초월한 매력에 매료될 것입니다.